Cheeky Parade 라스트 라이브

아이돌 이야기 2018. 7. 13. 02:21 Posted by e-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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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2일. 2011년부터 시작한 Cheeky Parade의 항해가 마무리됐다.

앞에 치키파의 마지막 멤버 7명, 뒤에는 왼쪽부터 현 스파가 멤버 9명, 전 GEM 멤버 6명, 현 와스타 멤버 4명 순서로 모여있다.

와스타도 팬클럽 사이트를 따로 오픈했고, 온전히 에이벡스 뱅가드에서 직영하는 팀은 스파가 하나로 집중. 그래서 스파가의 이번 싱글 버블리 스카시의 커플링곡으로 예전부터 전해져오던 아이돌스트릿 연구생의 곡이 그대로 쓰이고 최근 계속 공연 중이다.

치키파의 역사는 딴데도 많이 기록되어있지만, 개인적으로 포인트 몇 부분을 잡아볼만한 부분을 써보려고 한다.

1) 오디션 불합격자를 모은 그룹 : 일본 아이돌씬에서 아마도 모닝구 이후부터 내려오는 클리셰 중 하나인데 아이돌씬의 빈 공간이 한쪽에 보였던 2010년 에이벡스 오디션 2010으로 에이벡스는 Super Girls(이하 스파가)를 결성한다. 선발 과정을 전부 중계했는데 지역별 예선부터 본선까지 아이돌 팬들 시청자들은 팀이 결성되자 곧바로 스파가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최종 라운드까지 올라간 멤버들 역시 팬이 남았는데 이 멤버들이 아이돌스트릿 연구생을 거쳐 Cheeky Parade(이하 치키파)를 결성할 당시 코어 팬이 되어서 초반 활동을 해낼 수 있었다. 결성당시 9인 중에 2010 오디션에 참가하지 않았던 멤버는 코다카리 모모카가 유일했다.

2) 대표곡은 Cheeky Dreamer : 인디 시절 나온 싱글 치키 드리머는 각 지점마다 포인트가 잡혀있고 믹스를 넣기 좋은 속도와 박자로 팀이 끝날때까지 최고의 간판곡으로 자리매김한다. 반면에 오타 난동의 주역곡이라는 오명도 쓰는데 아이돌 페스티발에서 가장 난동꾼이 많은 팀으로도 후에 악명을 떨친다. 

3) 악명높은 오타군단 : 데뷔부터 꾸준히 공연때마다 많은 팬들이 모이기로 유명했던 치키파인데 특히나 믹스를 즐기고 오타들의 난동이 항상 가득한 공연과 리리이베 덕분에 초반의 고정팬들이나 연령대 높은 팬들의 이탈이 가속화됐다. 점프, 리프트, 상의 탈의 등의 과도한 응원 제스쳐로 인해 많은 페스티발에서 가드와 충돌이 많은 공연으로 늘 꼽혀왔고 청년관 공연 취소에도 일조했던 흑역사로도 이어졌다.

4) 야마모토 마린 : 치키파의 메인보컬. 시원시원하게 지르는 보이스가 인상적인 야마모토 마린의 보컬은 음악적 핵심이었는데 유독 싱글컷할 곡들 중에 마린의 비중을 줄이려는 노력이 보일때마다 음악적 퀄리티가 떨어져나갔다. 유학간 후의 싱글들은 더 처참했...

5) BUNBUN NINE9' : 메이저 데뷔싱글 분분나인은 처음 들었을때 무슨 아이돌 곡이 이렇게 애매하게 클라이막스를 만들고 포인트 없이 흘러가나 싶었다. 이걸 살려낸 것은 오타들이 만든 믹스였다. 

カプサイシンって知ってるぅ?

캡사이신을 알고있어?

대체 어디서 이런 문장을 가져왔는지도 의문이지만 이런 문장이 믹스에 나오면 피식 웃기긴하다. 캡사이신이라니...

6) 리더의 나이는 GEM쪽에 위 : 아이돌스트릿의 두번째 팀이 치키파, 세번째 팀이 GEM으로 결성 시기는 2년 정도 차이가 나는데 치키파의 리더 세키네 유나는 94년생, GEM의 리더 카나자와 유키는 93년생이다. 데뷔 시기가 늦은 GEM이지만 훗가이도 지역 로컬돌이나 AKB48 연구생을 거쳐 이전 경력이 많았던 카나자와 유키쪽이 한살 많다.

7) GEM보다 늦은 해산 : 결성을 먼저하기도 했지만 회사 상황이 안좋아지는 가운데 정리될 팀으로 예견되었고 치키파쪽 멤버들이 먼저 일이 터지긴했지만, 유학 멤버들의 상황이나 정리 순서에 있어서 GEM쪽을 먼저 마무리하고 3달 후에 치키파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의미가 없긴 마찬가지.

8) 수도권 출신 중심의 멤버 구성 : 스트릿생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도쿄를 중심으로 거주하는게 유리했기에 오디션 탈락자 중에 스트릿생 생활을 할 수 있었던게 주로 도쿄 근교 거주자들이었을 것이라는 추측되는 부분이다. 스트릿생 생활이 비교적 짧았던 모모는 오사카출신, 아사미가 토치기, 마린이 제일 먼 미에 출신이었다.

이런 지역적 불균형은 후에 아이돌스트릿을 후쿠오카, 오사카, 나고야, 도쿄, 삿포르로 운영하는 계기가 되었고 5기 이후부터는 Step One의 연습생들을 영입해 센다이 지점까지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 지역 배분은 이후 아이스토 팀을 결성하는데의 한가지 요소로 작용하는데 유명인 배출이 적은 지방에서 아이돌이 나오는 경우 좋은 점들을 보여준 경우가 GEM의 다케다 마아야였다. 후쿠이 신문 광고와 지역 캐릭터와의 프로모션, 지방 특화 산업과의 연계 등까지 다양한 비지니스로 이어졌다. 또 다른 예시로는 와스타의 히로카와 나나세였는데, 동네가 경쟁이 심하다보니 지역 일과는 연계되지 않아도 연구생 시절 탄탄히 닦아놓은 지역 팬들의 서포트를 데뷔후에 크게 받은 경우로 볼 수 있다. 

9) 돈치키파 : 돈키호테와 함께했던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돈키호테 + 치키파의 합성어 돈치키파가 있었다. 돈키호테 매장을 거닐다보면 뜬금포로 한번씩 들리던 그들의 목소리를 팬들은 들었으리라.

10) Cheeky Parade PREMIUM LIVE "THE FIRST" : 개인적으로 여러 아이돌의 영상을 봤지만 가장 좋았던 작품 중 하나였다. 에이벡스의 편집과 후작업 능력은 말할것도 없지만 너무 늘어지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면서 앨범과 거의 비슷한 순서로 곡을 배열한 이 공연도 좋다. 개인적으로 치키파 입문이 무척이나 늦은 편인데 이 블루레이를 보고 한 시즌 지나서부터 갔던걸로 기억한다. 왜냐면 이 블루레이 영상을 보고 조사하다가 이 공연 직전에 이들의 사건이 터진걸 봤고 좀 떨떠름해서 GEM을 갔다. 


아이돌을 분류하는 이런저런 용어들이 있는데 굳이 따지면 스파가는 일반형으로 어느 팬에게나 적당한 수준에서 어필 가능한 팀이고, 치키파는 악곡파다. 음악적 색채가 뚜렷하고 지향점이 분명했던 팀이지만 아마도 마린 유학이후 음악색이 너무 확 바뀌어 그런 매력을 이어가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것 같다. GEM은 성능파였고, 퍼포먼스 위주로 무대를 채우는 팀이었는데 이 완성이 니시다 히라리가 데뷔 1년을 넘어서면서 완성되면서였고. 이런 분류로는 와스타가 정의가 안된다. 포지션도 애매하고 어필 포인트는 갈수록 흐릿해져가는것 같고.


오늘은 치키파 첫 앨범을 다시 틀어봐야겠다. 그때 참 좋았는데.

 마지막 공연의 세트리스트. 역시 마지막은 치키 드리머다.

Together를 비롯해 치키파이터 등등등...탈퇴 멤버들이 주요 자리를 차지한 곡들은 편곡을 바꿔 부분을 싹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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