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최고의 커피

매일매일 잡설 2015. 4. 1. 23:38 Posted by e-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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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돌아오는 길에 으레 비행기를 타며 신문을 가지고 기내에 들어왔다. 너무 피곤했던탓에 2시간 비행시간중에 한시간은 자고, 밥이 나올때쯤깨서 밥먹고 녹차를 마신후 정신이 들길래 주섬주섬 신문을 펼쳐봤다. 그렇게 깊게 읽지는 않았지만, 눈에 들어온 글이 있었다. 김수혜 도쿄 특파원님이 쓴 리포트인 "도쿄 최고의 커피"라는 글이다.


프리미엄 조선에 오늘자로 실렸는지 네이버로만 검색해도 글이 나오고 있다.


조예가 깊은건 아니지만 커피를 좋아는 하니까 보기 시작한 글인데 여러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장인의 고집같은것도 있고 한편으로는 변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않고도 세상을 자신에게 적응시킨 능력도 있는듯 했다. 


그리고 기억에 남겨야하는 최고의 한 문장이 있었다.


"커피콩은 오래 묵힐수록 향이 좋아져. 단, 조건이 있어. 애초에 좋은 콩이라야 해."


몇년전에 이런 글을 읽었다면 그 앞에 문장들을 본받자고 열혈스럽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재미가 없으면 안맞는거야."라거나 "공부 열심히하는 가게는 다 버티고 있어."라거나. 물론 그 역시도 좋은 철학이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겠다. 재미가 있는 일을 열심히 해나가는게 그만큼 중요한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보다 마지막에 한 저 한마디가 훨씬 설득력이 강했다.


애초에 좋은 콩이 아니라면.

애초에.


타고난게 없다면 열심히 하건 재미가 있건 다 소용없는거다.


29일 아이돌스트릿 멤버들의 대량 졸업을 보면서 지금까지 본 여러 아이돌들의 졸업(이라고 쓰고 은퇴) 회견들이 스쳐지나갔다. 굳이 아이돌이 예가 아니라도 미술이나 음악을 하는 많은 친구들이 포기를 하고 평범하다는 생활로 가는 모습도 보았다. 


대게 사람이 중도에 포기하면서 현실의 벽이 높게 느껴졌다느니 현재 시스템에선 불가능하다느니 하는 헛소리를 하곤 하지만, 실제로 그런 벽은 "자신의 재능의 한계"인 것이다. 자기가 그런 벽을 뛰어넘을 재주가 없고, 시스템에 적응할 능력이 안되기 때문에 합당하게도 포기라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 변명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해왔지만, 안되는걸 억지로 되게하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긍정적인 메세지가 담겨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커피콩을 사다가 드립하면 다 같은 커피라고해도 앞뒤맛이 다 다르고 풍기는 향도 다 다르다. 스무살이 넘어가며 그렇게 커피를 마셔댔지만 그런 맛의 차이와 깊이를 알게 된건 꽤 근래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커피는 친구들 만나서 수다떨며 시간때우는 커피숍에서 나오는 음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그렇게 진지하게 마주할 일이 없었다. 


혼자 취미삼아 소소하게 드립용 기구들을 사서 내려먹으면서 그 디테일을 알게되었다. 어떤건 웬만큼 진하게 빼지않는이상 그 뒤에 나오는 단맛을 알 수도 없었고, 어떤건 고소함이 스쳐가는 시간이 짧아 주의를 기울여야 느낄수 있었다. 이런걸 가지고 설명충 등장하거나 잘난척하는건 다분히 그쪽 바닥에서 먹고사는 '전문가'들이 할일이니 우선순위 낮은 취미에 둔 내가 뭔가 미사여구를 꾸밀일은 없을것 같다. 


열심히 훈련하고 꾸미는 사람들, 혹은 수술로 신체 일부를 고쳐서라도 인생을 개척해나가려는 사람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아무리 해도 타고난건 절대 이길수가 없다. 특히나 쇼비지니스 계통이라면 그게 진정한 유리천장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시스템이나 사회 분위기는 재능있는 개인에 의해서 꾸준히 깨져오고 편견도 그렇게 깨져왔다. 그리고 재능없는 사람들에게 길이 열렸을때 비로소 그게 시스템이나 분위기 때문에 못했던게 아님을 알게 된다.


애초에 좋은 콩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볶이기전에 다른 좋은데 쓸수 있는지 알아보는게 좋을것이다. 세상에 할일은 한가지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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