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Color's - ODOD (One Day One Dream)

아이돌 클래식 2013. 8. 19. 00:12 Posted by e-rown
반응형


제목이 ODOD(One Day One Dream)이다. 오디오디 하니까 좀 웃기긴 한데 의미는 그렇다.


사실 이 팀이 생긴 사연을 따라가면 아이돌 세계의 여러 측면을 살펴보게 된다. 이 팀의 리더이자 실질적인 대주주 코모리 유이만 살펴보면 안다. 이 친구는 지금 그렇게 잘나가는 HKT48의 첫 팀인 팀H 소속이었다. 야심찼기 때문에 데뷔없이 극장 무대에 설때에도 동네에 출석부찍는 극장 팬들에게 인기가 많았지만, 사실 비주얼로는 많이 밀리던게 사실이긴했다. 팀H가 전면에 등장하기 전에도 48계열 팀들 중에는 최강 비주얼이 아니냐는 말들이 나왔을 정도니까. 일본에서도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후쿠오카에서 명성높은 AKB48의 자매그룹을 만든다니 얼마나 내놓라 하는 사람들이 모였을지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그리고 팀에서 유일하게 야마구치 출신이었던 코모리 유이는 일이 터지고 졸업이라고 말하는 강제탈퇴를 당하게 된다. 사실 코모리 유이는 이때 강제탈퇴 당한 멤버들 중에는 가장 인기가 없는 멤버였다. 이전 악수회에서 엄청난 판매량(17/18)을 보인 스가모토 유코라거나 귀염상으로 인기가 높았던 타니구치 아이리, 그리고 2011 총선의 1차 발표에서 순위권에 들었던 에토 사야카까지 모두 쫓겨났으니. 


그런데 가장 발빠르게 움직인쪽은 코모리 유이였다. 이 97년생 아이돌 경력자는 8월에 졸업하고 거의 바로 움직여서, 야마구치 의회, 여행사, 방송국의 스폰을 받아내고 야마구치의 로컬 아이돌을 만들게 된다. 어떤 마케터가 붙어서 여기 전략을 짰는지 모르지만, 정말로 순식간에 모든걸 준비하고 진행했고, 팀명도 공모를 받아서 지었다. 그 결과 다른 인기있던 세 멤버가 현재는 어디로 가야할지 방황하고 떠돌고 있는 반면 코모리 유이의 텐 컬러스는 빠르게 야마구치에서 자리를 잡은 로컬아이돌 팀으로 거듭났다. 


첫 공연 데뷔가 2012년 12월 말이었고, 현재까지 불과 8~9개월을 지나왔을 뿐인데, 한달에 한두번하는 200~300석 규모의 소규모 공연장 공연은 매진을 시키고, 야마구치-기타큐슈에 이르는 로컬 행사에 단골로 등장하고 있다. 코모리 유이의 아버지가 지역에서 꽤 파워를 발휘하는 자리라는 말이 나올정도다. 스케줄은 점차 많아지는게 눈에 보였다.


팀을 처음 만들때, 후쿠오카 로컬돌인 HR의 호시노 세이나와 함께 만들기 시작했지만, 이내 이전 팀을 배신하고 떠난 호시노 세이나에 대해 뒷말이 나오자 그대로 사퇴하고 코모리 유이의 독재적 권력이 형성되었다. 그런데 꽤나 잘하고 있다. 


이런 운영의 묘와 더불어 행운이 하나 있었다면, 야마모토 히사에라는 보기 드믄 인재를 뽑게된 점이었다. 



사진빨의 묘를 알아차린 최근의 야마모토 히사에 사진들.



여전히 코모리 유이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는 있지만, 뜻밖에 인기의 낙수효과가 일어나게 된 점이 유의미했다. 


메이저급으로 48의 후광을 받고 수많은 미디어에 등장하는 HKT48을 제외하고는 규슈와 야마구치를 아우르는 로컬급 아이돌 중에서는 블로그 댓글 수로만보면 아직 코모리 유이를 따라잡을 멤버는 없다. 반쯤은 HKT48의 후광을 입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만큼 영민하게 움직여왔다는 것도 인정해줘야할 것이다. 



위 공연과 비교하면 참 엉망이기 그지없는 공연이다. 어느 팀이나 데뷔무대는 흑역사라곤 하지만 이 친구들의 발전양상은 볼수록 재밌긴하다. 그 사이에 변화가 많긴했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확실히 빠르게 크긴했다는 점이다. 야마구치라는 틀이 있고, 전부들 학생이다보니 지역을 벗어나거나 메이저로 올라가기는 당장 몇년 내로는 힘들것이다. 역량도 아직이고. 하지만 코모리 유이가 키워내는걸 보면 웬지 믿음직하긴 하다. 보기와 달리 여장부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