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토가 그리고 90년대.

매일매일 잡설 2015. 1. 29. 21:53 Posted by e-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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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그 시대에 학생시절을 보냈던지라 영향권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토토가 1부의 SES, 2부의 터보만큼은 요 몇년간 느껴보지 못한 아득한 추억을 꺼내는 기분을 느끼게해줬으니. 정말로 그때는 좋았다. 단순히 학생시절이기때문에 좋았다는 것. 그 이상은 말할수 없을지 모른다. 어릴때야 요즘같은 걱정도 없었을뿐더러 대학으로 넘어가서 느낀 중2병적 고뇌도 없었으니까.


돌아보면 그렇게 행복하던 시기는 아니었다. 그 앞에서 경제 붕괴로 인해 나같은 평범한 삶은 지내던 학생도 무지막지하게 타격입고 굶지는 않았지만 고생은 고생대로 했다. 다만 그런 노래들은 그 와중에도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해줬으니 그때나 지금이나 역할은 비슷했다.


터보의 트위스트킹. 당시 반에서 몇명씩 뽑아가던 운동회용 응원단으로 뽑혀 가장 많이 연습하던 곡이 그 노래였다. 자의는 아니었겠지. 그곳에서 응원을 가르치던 선생들이 픽업한 노래들 중 하나였으니까. SES의 노래는 그 자체보다 친구들과 SES팬 vs 핑클팬으로 나눠서 수업시간 떠들던 기억이 더 박혀서 아련해졌을지 모른다. 


노래 자체에는 그렇게 열광한적이 없었다. 열광이라면 핑클의 데뷔곡인 '블루레인'쪽이었지만, 이내 반응없는 블루레인을 버리고 '내 남자친구에게'로 뜨면서 바람이 빠졌던 기억이 있다. 핑클 1집에서도 제일 많이 들었던건 '행복한 약속'이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블루레인과 더불어 가장 꽃혔던 곡이었으니.


그런데 거기서 끝이다. 90년대를 미화하느라 그때는 지금보다 좋았다고 하는말은 정말로 듣기 싫다. 그때 경제가 망해서 몇년내로 동네 친구들은 모두 헤어졌고 말못한 고생을 어린 학생들까지 죄다 했던 시기다. 


음악계는 좋았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지금처럼 세계와 오픈된 상황이 아니었으니 표절이 횡횡햇고 걸려도 스무스하게 넘어가면 그만이던 시절이다. 이렇게 오픈된 시대에도 표절하고 교묘하게 베끼기 바쁜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이후에도 지금까지도 해외 트렌드는 베끼기 바빴고, 일부는 외국 가사를 가져오는 행태도 이어오고 있다. 실험하기는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미디어의 영향력은 지금보다 훨씬 강해서 들려주는 노래만 들어야했다. 개인적으로 라디오를 즐겨들었는데, 그때는 라디오에서 인기있던 곡과 TV에서 인기있던 곡이 아주 달랐다. 전람회, 윤종신, 이승환, 그후로 따라온 토이, 박정현 등등..TV에서도 음악 전문프로에서만 나오고 가요 프로에서는 보기도 힘들었던 가수들이었다. 


건축학개론으로 재조명받았던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야 말로 라디오에선 초 히트곡이었고, 음반도 엄청나게 팔렸다만, 그런 TV 가요프로에선 쉽사리 들을수도 없었던 곡이다. 그나마 수요예술무대정도 봐야 나왔을까. 라이브 무대를 사로잡던 가수들과 미디어 등장하던 가수들의 경계가 꽤나 분명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라이브 중심의 팀들이 인디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심지어 TV에 나오지 않고도 음반을 엄청나게 팔아제꼈으니.


무한도전 '토토가'는 분명 나에게도 반가운 추억을 주긴했지만, 여기에 대해서 과도한 미화와 찬양은 눈쌀을 찌푸리기 충분했다. 1절만 했어야 한다. 그 가수들이 다시 잘되는 것에 대해서는 별 불만없다. 기회가 다시 오는걸 잡지 않는게 멍청한거니까. 다만 큰 컨텍스트에 대해 설명없이 찬란한 영광에 대한 무조건적 찬양을 이어가는 모습은 별로 즐겁지 않은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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