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어디로 흐른다.

매일매일 잡설 2015. 1. 27. 16:48 Posted by e-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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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머무는 시간은 온전히 아이돌을 보기위해 투자했다. 평소는 일이 90%에 아이돌 보는데 10%를 소요했다면, 도쿄에서의 시간은 출발부터 작정하고 떠났다. 한달 반 전에 질러놓은 이벤트로 인해 하루는 이미 예정되었지만, 그 전날에 공연이 잡혔고, 그 다음날에는 다른팀의 이벤트가 생겨준 덕분에 다른 일을 대폭 축소시키고 집중해보기로 했다.


비행기를 탈때마다 느끼지만, 배는 여러모로 제약이 적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김해공항에서 에어부산에 몸을 싣고 나리타로 향했다. 세번째 나리타행. 도심까지 느릿느릿 가면서 지난번 탔던 나리타 익스프레스가 그리워졌다. 공항에서 할인티켓을 끊고 도쿄까지 직행하는게 시간을 생각하면 효율적이겠다는 생각을 여러번 할수밖에 없었다.


호텔은 아사쿠사 바시역에서 큰길로 약간만 걸으면 나오는 위치 좋은 호텔. 날자가 임박해 예약한 덕분에 근처 호텔들이 없어 겨우 구한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비하면 혼자 쓰기엔 꽤 이상적인 곳이었다. 다소 오래된 호텔이라는것만 제외하면.


그리고 아키바 컬쳐 극장에서 공연 관람. 예매해주신 L님의 도움과 운으로 두번째줄에서 관람하게됐다. 한달을 넘게 그네들의 공연을 영상으로 봤건만 결국 공연장에 들어서서 정신줄 놓는건 처음 공연을 보는 입장에선 변함이 없었다. 처음부터 시끄럽게 믹스넣고 하는게 되려 이상한거지. 생각보다 좁은 아키바컬쳐 극장에 함성으로 차는건 큰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올해 첫 공연.


공연이 끝나고 유유히 악수회 준비가 들어간다. 전같았으면 아는 사람도 없는 그 바닥에서 두리번거리며 헤맸으리라. 하지만 이바닥 짬만 벌써 3년이 되간다. 눈팅만 하는 키워들과 다르다고 자부하는건, 발로 뛴것만 3년이고 쌩판 모르는 바닥에서도 능숙하지 못한 일본어로 잘만 적응해왔다는 점. 공연과 악수회가 지나니 어느정도 다음날에 대한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화면으로 보는 것과 직접 대면하는 것과는 완벽히 다른 양상이 나오는데, 그렇기 때문에 일회성 원정 팬질하는 사람들 말을 잘 안믿게 되는 것이다. 어느정도 밥먹듯 다니는 사람이 미화하지 않은 말 정도만 믿을뿐.


공연이 끝나고 소화도 시킬겸, 툴리스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놓고 멍하니 생각에 젖었다. 아이돌에 관한 생각보다는 그 자리에 앉아있던 자신에 대한 회한같은것이었다. 중2병이 잠시 찾아왔다. 2008년 그 근방에서 두번째 해외여행을 만끽하던 모습과 어느정도 밥먹듯 다니는 일본, 그 와중에 다시 와본 도쿄. 들뜬 마음이 없었다. 여행의 기대감보다는 차분히 준비한 일정에 무리가 가지 않으려고 방어적으로 움직였고, 가방엔 다음날 아침삼아 마실 몬스터 한캔이 준비되어 있었다. 


공연을 보면서 넋이 나간건 처음 봤다는 문제도 있었지만, 영상에서 본것 이상의 기량을 발휘한 것과 그간 보아온 온갖 아이돌 공연들에 비해서도 넘치는 공연의 질적 문제는 급기야 "내가 지금까지 본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괜한 어려운 생각은 접고도, 좋은 공연을 본 괜찮은 날이었다. 


다음날은 기다리던 이벤트. 이 이벤트를 위해 꽤 거금을 썼으니 아침일찍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벤트에 들인돈은 3만엔 뿐이지만, 이를 위해 비행기 30만원에 호텔 2만엔을 투자한 것이니 대략 80을 썼다. 다른그룹 이벤트를 다녀보면 48이 많은 인기를 유지하면서 얼마나 싸게 이벤트를 돌리는지도 알게된다. 악수회 단가 천엔, 투샷회 단가 천엔이라는 놀라울만한 저가 공세인 셈이다. 물론 한국인 입장에선 그게 천엔이건 사천엔이건 앞뒤로 경비가 기본 50만원 이상 붙어주기때문에 여기 무감각해질수도 있다. 


여튼 그렇게 아침일찍 도쿄 근처에 꽤 크다는 쇼핑몰에 가서 이벤트 장소 위치를 파악했다. 별로 복잡하진 않았지만, 그것조차 잘 몰랐기에 미리 가서 대기타는게 마음 편했다. 이벤트는 10시부터 시작. 꼼꼼히 준비해간 덕분에 별 불편없이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 아무리 준비해도 불안하긴했지만, 생각보다 참여자가 많지 않기때문인지 불편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 


그렇게 꼬박 하루를 그곳에서 보냈다. 이벤트를 다 마치고 호텔로 돌아간 시간은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였다. 이벤트의 시간 배분을 자세히 봤다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아드레날린 충만한 상태에선 그냥 양껏 질렀고, 수습은 가서 해야했다. 덕분에 중간에 비는 시간이 4시간 정도가 생겨버렸고, 쇼핑몰 구석에 숨기 좋은 곳에서 두어시간 정도 보낼수밖에 없었다.


비행피로, 짧은 수면시간, 아침부터 긴장까지 육체적 피로를 누적시켜왔던걸 그 자리에서 한번에 풀순 없었다. 억지로 걸어다니고 더 피곤해져봐야 내 손해였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30분 정도 졸고나서 느낀 개운함은 인생에서 흔치않게 느낀 개운함이었다. 처음간 장소에서 자리잡고 꾸벅꾸벅 졸다니.


정작 그 시간에는 후회했지만, 마지막 악수회에 가서 멤버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헛시간을 보낸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되려 감동한 부분까지 있었으니, 그쯤이면 후회할 일은 아니었다. 아마 다음에 똑같은식으로 뭘 해도 똑같이 대응할것 같다. 되려 돈을 더 쓸것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 서비스산업은 발전을 거듭했으면서 결국 감동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 


그렇게 하루 감동을 간직한채 호텔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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