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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오리콘 데일리챠트



흔히 마케팅용 수법인데, 싱글을 화요일에 발매해서 데일리 순위를 먹는 방법으로 우리나라 가수들도 일본진출해서 데일리 순위 잘받으려고 심심치않게 써먹은 수법이다. 대부분 싱글은 수요일에 나와서 격돌을 하니 전주 끝자락에서 다른 싱글들의 판매력이 힘을 잃은 틈을 타 빈집 털이 들어가는 건데 그래도 1위는 못먹었다. 


300장 이내로 차이가 나는게 텐컬러스 입장에서 아쉬울것도 같다. 팬 두세명 정도가 구입해주는 양이다보니.


야마구치-고쿠라, 좀더 나가봐야 서쪽으로 후쿠오카, 동쪽으로 히로시마 정도의 활동 반경인 로컬 아이돌치고는 건투햇다. 사실 이 싱글은 작년 12월 중순부터 예약 받고 있었다. 내가 아는것만 그정도고 동네에서는 11월부터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연말에 도쿄에서 있던 아이돌 연합공연을 틈타서 도쿄의 음반점 곳곳에서도 이벤트를 벌여서 예약을 받았고, 볼것도 없이 주말 공연에서 이벤트권 대신 음반 예약을 받으며 열심히 뛰었을 것이다. 


특이한 상술이 아니라 현재 로컬로 활동하는 대부분의 아이돌 팀들이 공식처럼 사용하는 방법이다. 전에는 2달전에만 예약받고 있어도 참 노력한다고 비꼬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3달 정도 전에 받는건 기본으로 깔고 가는것 같다. 




텐컬러스의 팬 절반정도를 먹고 있다는 야마모토 히사에는 여전히 건재하긴 하지만, 팬의 숫자 증가에 따라 완급조절이 들어감으로서 열성팬의 숫자는 크게 늘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 풋풋한 모습에 물불 안가리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는데 최근 들어선 조금은 베테랑스러운 대응이 되려 아쉬운 면도 없지 않다. 그리고 외모도 약간은 변화가 있고.


리더인 호리아이 하루나가 제 역할을 하는 가운데, 사진집 발매, 싱글발매 그리고 매주 꽉찬 스케줄 등으로 회사도 바쁘게 돌아가고는 있긴한데, 틀은 아직 잡히지 않은 느낌이다. 게다가 2기생으로 들어온 멤버들이 1기에 비해서 임팩트가 너무 작다는 것도 아쉽다. 시작은 코모리 유이의 이름으로 했지만, 우이땅이 나가고도 별 타격없이 꾸준히 성장해온걸 보면 그거대로 대단하긴 하다.



(이건 아냐 ㅡㅜ)


처음 텐컬러스를 보러 갔던게 2013년 봄이었는데 꼬박 2년이 지나는 동안 열심히는 아니지만 은근히 공연을 많이 봐왔고 그간의 변화를 그대로 보게됐다. 우이땅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할때부터 주시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잘하고, 오래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특히나 코모리 유이가 졸업한 후에도 세를 집결시키고 활발히 확장하게 된 부분은 순전히 1기생 세명 - 야마모토 히사에, 호리아이 하루나, 후쿠마 아미- 의 공로다. 그만큼 셋이서 쿵짝이 잘 맞아서 여전히 그 힘으로 버텨가는것 같다. 


코모리 유이가 졸업했던 그 겨울에 상황이 궁금해서 이들의 단독 공연도 찾아가서 봤었는데, 정말로 아무런 타격이 없어보여서 신기했다. 개인의 팬이 팀의 팬으로 자연스레 녹아내린것도 있었고, 아이돌이 그다지 없던 지역이라 동네 팬들을 모은 부분도 작지 않을 것이다. (야마구치 활성학원이 있긴했지만.)


조금은 느슨하게 보고있긴하지만, 다음엔 더 좋은 곡으로 싱글을 냈으면 한다. 싱글 전 버전에 실린 5곡이 모두 세이슌학원의 SHUN 곡이라는데...지난번에 받은 코모P곡은 어디다 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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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et - Believe in yourself

아이돌 클래식 2015. 2. 1. 23:10 Posted by e-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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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et의 데뷔곡 believe in yourself다. 역시 call & response 방식의 곡 구성이 라이브 보러갈 의욕을 자아낸다. 마케나이데와 다이죠브만 알고 가면 된다. 

이 노래가 유명한 것은 곡이 좋은것도 있겠지만, 만화 토리코의 삽입곡으로 쓰이면서 시청자층에 널리 알려진것도 클 것이다. 보통 인기가 아닌 애니메이션인만큼.



palet는 파스포와 프레디아의 동생그룹으로 나오면서 왕도의 아이돌을 표방한다고 했지만, 지금 상황을 듣자니 왕도는 커녕 팀이 유지되는게 신기할 정도인것 같다. 이런저런 뒷얘기가 무성한만큼.


그래도 지난 도쿄일정에서 투샷을 굳이 찍으러 갔다. 이유는 사키모(타케다 사키) 때문이었다. 현존하는 아이돌 멤버들 중에 손에 꼽게 귀여운 비주얼이었으니 시간이나 돈을 들일 가치가 있었다. 실물로 봐도 사진의 딱 그 모습



귀엽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비주얼이다.그리고 그만큼이나 무성의한 말투도 매력적이다. 그냥 만사가 귀찮다는 듯한 '아리가토' 무슨 기계가 대답하는 것 마냥. 


아이돌팀들을 보러 다니다보면 진짜 귀여운것과 노력해서 귀여워진 것, 꾸며진 귀여움 같은것들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혹은 취향에 의해 다른 팬들과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이 있을수도 있는데 그런걸 다 떠나 사키모는 자체가 귀엽다. 간혹 이런 비주얼에 걸맞는 대응을 바라는 우를 범할 수 있지만 쓸데없는 기대는 버리자. 이런애들이 있으면 저런애들도 있는법. 


좋은 대응을 바란다면 파렛트의 기둥이자 리더이자 메인보컬이며 (비주얼을 제외한) 모든걸 책임지고 있는 후지모토 유이에게 가면 좋지 않을까 싶다. 말도 많고 빠르고 사람도 좋아보였다. 물론 난 안갔다. 악수회 대응은 어떨지 몰라도 투샷회 대응은 셋 다 좋았다. 너무 붙길래 처음엔 긴장했는데 파렛토는 과도하게 붙어주는 아주 좋은 팀이었다. 


다른 멤버를 뭔가 찬양하며 글을 쓰고싶지만 사건을 숨기기위해 이만 글을 접는다. 파렛토의 이벤트는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에 큰 임팩트를 주며 다시금 그들을 보게만든 아주 뜻깊은 시간이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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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R 엔터테인먼트와 고쿠라 아루아루시티의 합작으로 야심차게 내놓은 프로젝트 GALETTe의 순항에 제동이 걸릴것 같다. 나름 힘겹게 도쿄까지 오가며 팬을 결집중이었는데, 이 와중에 멤버인 호사카 아야노(保坂朱乃)가 졸업을 해버렸다.


ITR엔터테인먼트 입장에선 키우고 있는 아이돌팀 I'S9(아이스나인)이 어느정도 자리잡고 성장할때까지 회사 브랜드를 키워줄 팀으로 가렛은 적격인 팀이었다. 큐슈 드림팀이라는 이름을 갖고 나왔지만 시작에는 다소 부족한 라인업이란 생각이 들법도 했던 초반의 4인 멤버였다는걸 상기해보자. 하지만 당시 야마구치 아이돌팀 10Color's (텐 컬러스)를 이끌고 있던 전 HKT48 출신으로 유명한 코모리 유이를 영입함으로서 대거 팬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순항은 시작되었다.


확실히 코모리 유이의 힘이 컸다. 초반에 부족한 홍보마저도 HKT48의 전 멤버라는 이유로 그리고 지역에서 홍보력을 가진 회사와 시너지를 낼 수 있었던 이유로 터트릴 수 있었다. 이제 막 avex의 girl pop wave에 도쿄죠시류, 도로시 리틀 해피 같은 더 높은 이름값의 팀들과 함께 활동을 하며 한단계 올라서려던 찰나에 그만두게 된것이다.




사진만봐서는 이들은 별일 없어보이지만, 다른 세 멤버에 비해서 호사카 아야노는 그다지 '성공에 목마르지 않다'는 느낌은 그대로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들의 과거를 살펴보자.


시시마 사키는 CQC라는 팀 소속이었다. 다소 90년대스러운 음악풍에 Campus Queen Collect라는 이름답게 대학의 캠퍼스 퀸들을 모아 만든팀이었는데 이 팀은 시작부터 대학생들 답게 학업에 열중하고 자기 길을 가려고 빠지더니 후에 5명만 남기도하고 장사가 안되서 회사가 부도나서 팀이 공중분해되버렸다. 하지만 여기에 굴하지않고 시시마사키는 고쿠라의 아루아루시티로 가서 홍보 모델을 하고 전단을 나눠주는 등 개고생(?)을 하며 결국에 ITR과 만나 GALETTe로 활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다시 아이돌을 하기에 많은 나이(1991년생)이란 생각도 접어두고 발벗고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노노코는 오이타의 아이돌팀 Chimo 소속이었다. 지역내 인기야 조금 있었을지 모르지만, 챠이모는 고3 졸업을하면 팀에서도 졸업을 하는 시스템이 있었고, 아이돌 생활을 이어가고 싶던 노노코는 과감히 챠이모에서 넘어왔다. 돌아갈 길이 아예 없어져버렸고, 피곤하지만 도쿄를 오가는 것도 마다할 수 없었다. 


그리고 코모리 유이. HKT48에서 강제졸업당하고 반년만에 야마구치의 이런저런 스폰서를 모아 텐컬러스로 돌아와 자기 팬을 결집시킬만큼 멘탈하나는 강렬한 아이돌이었다. 그렇게 텐컬러스 활동을 하면서 팀이 자생적으로 돌수 있게해놓고 자신은 더 큰 꿈을 위해 가렛으로 넘어왔다. 텐컬러스에 피해를 줬다고 할수 없는건 그때부터 지금까지 오히려 텐컬러스는 더 성장했고 지역내에서 자생을 넘어 주말마다 공연을 하고 팬들을 모으는 등 상당히 수익성있는 팀이 되버렸다. 그렇게 자기가 만들어놓은 팀도 떠날만큼 더 큰 성공에 대한 신념이 있었다.


반면에 호사카 아야노는 달랐다. 가렛에 들어간 계기는 ITR에서 활동하다가 회사의 요구에 의해 들어가게 된 것. 가렛을 하면서도 자신의 솔로 커리어를 끊지도 않았고 솔로 무대를 서는것도 멈추지 않고 지속해나갔다. 돌아갈 길도 있었고, 팀을 나간다고 회사에서 위치가 완전히 사라질 것도 아니었다. 


일간 스파에 인터뷰를 보면 좀 더 이해가 가능할것 같다.

http://nikkan-spa.jp/784156


인터뷰어: 매주 도쿄에 와서 엄청 힘들었죠?
노노코 : 도쿄에서 돌아와서 (후쿠오카) 도착 했구나 ~라고 생각해도 아직 집에 도착하지 않았죠. 오이타까지 소닉 전차를 타고 돌아가거든요. 그렇지만 언제나 막차 시간에 늦어서 그날은 묵고 다음날 아침에 오이타까지 가요.

코모리 유이 : 비행기로 대체로 일요일 마지막으로 돌아와요. 돌아와서 고쿠라 또는 후쿠오카에 머물고 첫차 신칸센으로 야마구치로 돌아가 학교에 가요. 집에 돌아갈 수 없어서 차에서 옷을 갈아 입고 그대로 학교에 갔을 때도 있었어요. 같은 후쿠오카에 사는 사키도 못지않게 멀죠.

시시마 사키 : 쿠루메는 (후쿠오카) 시내보다 훨씬 떨어져 있어서요.

반면에 교통이 편리한 곳에 사는 호사카 아야노.

호사카 아야노 : 저는 후쿠오카 시내에서, 멤버들 중에선 편한 곳에 살고 있기 때문에, 3명에 비하면 이동에서 힘들었던 적은 별로 없어요.

이렇게 3:1의 상황에 닿은데다가 도쿄에 가는게 귀찮아진 호사카 아야노는 졸업을 해버리는데, 지금부터가 문제다. 세명으로 팀을 이어갈수는 있지만, 체력 문제부터 온갖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 스케줄을 줄이자니 지금까지 이뤄놓은게 있어서 그럴수도 없을것이고 결국 누군가는 들어와야할 것이다. 후쿠오카의 아이돌 인재풀은 좁지 않은 편이니 어쨋거나 하나 잘 찾아주길 바란다. 


남은 셋도 모두 기존에 출신 팀들이 있어서 끌어올 수 있는 은퇴한 아이돌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도 메리트가 될수도 있다. 전 HKT48출신의 에토 사야카 정도면 엄청나게 이슈몰이도 가능할것이고 숨은 팬들도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건 괜한 기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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